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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그리스도 교회 대성당은 스톤타운(잔지바르 시티의 구시가지)에서 동아프리카 최대의 노예 시장이 열리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제단은 팔려 나갈 노예들이 채찍질을 당하던 바로 그 자리에 놓였습니다. 의자 사이의 바닥에는 지하에 있던 노예 감옥을 기억하기 위한 검은 자갈이 깔려 있습니다. 대성당 밖에는 노예가 구매자에게 선보여지던 방식을 재현하여 목에 사슬이 묶인 네 사람을 나타낸 석조 기념물이 있습니다.
A sad and moving story
15세기 말부터 포르투갈이 거의 두 세기 동안 잔지바르를 지배했습니다. 1698년 포르투갈이 쫓겨난 뒤 잔지바르는 오만 술탄국의 일부가 되었고, 섬에서는 노예, 상아, 향신료 농장 무역이 발달했습니다. 노예 무역이 주된 활동이었으며, 인도양의 농장에서 노예를 쓰던 유럽인과 아프리카 지배자들을 상업적으로 이어 주었습니다. 19세기에 잔지바르 술탄국은 인도양의 전략적 위치 덕분에 동아프리카 최대의 노예 시장으로 두드러졌습니다. 1830년부터 1873년 사이에 약 60만 명이 상품으로 팔렸고, 수천 명이 일시적으로 이곳을 거쳐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도시의 노예 사업은 1873년 폐지될 때까지 유럽인, 인도인, 아랍인, 현지 지도자들이 운영했습니다. 잔지바르는 19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다른 활동가들이 이끈 노예제 반대 운동의 중요한 중심지였으며, 이 운동은 노예제 폐지로 이어졌습니다.
1861년 이 나라는 오만 술탄국에서 분리되어 1963년까지 영국령이 되었다가, 그해 잔지바르·펨바 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잔지바르 혁명으로 알려진 사건의 결과로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공동체 간의 민족 갈등 속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거나 추방당했습니다.
혁명 3개월 뒤인 1964년 4월, 이 나라는 이웃한 탕가니카 공화국과 합쳐 현재의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을 세웠습니다.
잔지바르 섬은 아라비아 반도, 인도, 유럽, 아프리카 해안에서 온 사람들의 유입으로 문화가 독특하게 어우러진 용광로입니다.
이 나라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자 노예 시장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성공회 그리스도 교회 대성당이 세워져 1879년 크리스마스에 봉헌되었습니다. 성공회 주교 에드워드 스티어가 1873년 크리스마스에 초석을 놓는 제안서를 제출했으며, 건설에는 7년이 걸렸습니다.
에드워드 스티어는 아프리카에서 노예제와 싸운 것으로 알려진 영국인 의사이자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함께 일했습니다. 이 사업은 스톤타운(잔지바르 시티의 구시가지)에서 주로 쓰이던 재료인 산호석을 사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 고딕과 이슬람 양식을 결합했습니다.
잔지바르 혁명 이후 이 나라의 독립이 선언되었고 1960년대에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노예 시장이 있던 장소를 확인하는 작업은 잔지바르 정체성이 발전하는 맥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잔지바르 구시가지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노예 시장 중 하나였고 "서로 다른 문화의 통합과 조화를 보여 주는 특별한 살아 있는 사례"라는 이유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부터 유네스코와 여러 기관이 스톤타운의 보존과 복원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대성당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표지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옛 노예 시장 터에 서 계십니다. 이곳은 세계 최후의 공개 노예 시장이자,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노예가 매매되던 악명 높은 장소입니다."
지하에는 팔려 나갈 노예를 가두던 감옥이 있습니다. 사용되던 당시에는 방이 열다섯 개였으나 지금은 두 곳만 방문할 수 있으며, 하나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방, 다른 하나는 남성을 위한 방입니다. 이곳은 매우 추웠고, 노예가 목이나 발에 사슬로 묶이던 벤치는 돌로 되어 있었습니다.
대성당 밖에는 스웨덴 조각가 클라라 쇠르네스가 1998년에 제작한 노예 기념비가 있습니다. 대성당 근처에서는 2006년 6월 15일에 동아프리카 노예 시장 전시관이 개관했습니다. 박물관은 전시실에서 노예 수송, 매매 과정, 목적지, 노예제 폐지, 그리고 21세기의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를 보여 줍니다.
